연암박지원의 시대적배경
18세기를 전후하여 조선 후기 사회는 극심한 갈등으로 번민하면서 소리없이 요동하며 절규하고 있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잃은 것은 삶과 삶에 대한 윤리, 그리고 행복이었고, 얻은 것은 비참과 자아 각성이었다. 연암이 그의 청소년시절을 보내었던 18세기
실학을 강조하였으며, 특히 자유 기발한 문체를 구사하여 여러 편의 한문소설을 발표, 양반계층의 타락상을 고발하고 근대사회를 예견하는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함으로써 많은 파문과 영향을 끼쳤다.
여기서는 그의 사상, 문학, 청문화에대해 알아보겠다.
2. 박지원의 생애
1. 연암의 초년
특징으로 가진다.
(1) ‘-기, -기략, -소초, -퇴술’
기(記)는 단순히 어떠한 일이나 사건을 기술하는 것이다. 박상영, 「『열하일기』에 나타난 산문 시학: <환희기>의 담론 구성 방식을 중심으로」, 『국어국문학』, 국어국문학회, 2006.
연암박지원은 본래 가지고 있는 특성에다 시대적인 상황
사상, 보민 사상 등은 억압받은 민중들에게 깊은 공감을 일으킨다. 서학, 즉 천주교의 도입은 한국사에서 귀중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 이유는 서학을 통해 한국 지식인들이 보민・평등사상을 익혀, 계급 차대 ․ 서얼차대 ․ 문벌 중시의 유교적 제도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그것을 신
실학에 몰두하고 있던 정조 2년(1778) 자신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홍국영이 세도를 잡고 벽파(僻派)를 박해하자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황해도 금천(金川)에 있는 연암협(燕巖峽)으로 피신하여 은둔 생활을 하게 된다. 연암이란 호는 이 골짝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곳에서 2년쯤 지내다가 정조 4년(1780)
사상과 견해가 응집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서양의 영향으로 변화를 겪는 조선과 청조 두 나라 지식인의 새로운 체험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다. 박향란, 투고논문 : 『열하일기(熱河日記)』필담(筆談)에 포착된 청조(淸朝) 지식인의 형상과 의미, 2009, 동방한문학회
박지원은 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박지원은 문학적 기질을 타고났으며 그 위에 독서와 궁리에 힘을 쏟은 결과 ‘고’도 ‘금’도 아닌 독특한 문학적 체계를 완성했다고 하였다. 이종호, 조선의 문인이 걸어온 길, 한길사, 2004.
이른바, 그는 그만의 사상과 신념이 투명된 독특한 문장체계인 ‘연암체’를 완성시킨 것이다.
“붓에
쌍거풀이 지셨으며 귀는 크고 희셨다. 광대뼈는 귀밑까지 이어졌고 기름한 얼굴에 수염이 듬성듬성하셨으며 이마 위에는 주름이 있는데 마치 달을 치어다 볼 때 그러한 것 같았다. 키가 커 훤칠하셨으며 어깨와 등은 곧추섰고 정신과 풍채는 활달하셨다. 박종채,『과정록』, 한국한문학연구, 제6집.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5-1805)이다. 이에 본고는 근대초기문학이 진행되었던 조선 후기 당시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되짚어보고, 박지원의 문학관과 그의 대표작 『열하일기』에 구현된 근대 의식, 시조의 붕괴 과정 등을 살펴보도록 한다.
2. 근대초기문학(조선후기 문학)의 전개과정
2. 1. 가